세기의 노을녁에 슬그머니 이 책을 내려놓는다.
마치 내 물건이 아닌 것처럼 슬쩍 떨구어 놓고는 가급적 희미하게, 무사하게 시야에서 사라져 주길 바라듯이 그렇게 떠내려 보낸다.
잘 가거라. 잘 떠내려 가거라. 너는 이제 내가 아냐. 안녕. 아비를 찾지 말거라. ‘산소의 양이 부족했던’ 힘들었던 시절, 투쟁과 싸움터의 한가운데서 너를 가졌단다.
생후의 네 모습에 대한 기약도 없이 아주 먼 옛날 그 시절에 만들어진 너의, 마치 미숙아처럼, 아직도 축축한 피부 속 한 자루의 내장, 팔딱거리는 허파 잎... 잘 가거라. 잘 마르고 영글거라. 네 길을 가거라.